이별한지 6일째. 평소하고 비슷한 토요일을 보낸다.
느즈막히 일어나 강아지랑 조금 놀다가, TV 조금 보고 엄마가 쪄준 만두를 먹고, 또 다시 잠을 잔다. 일어나서 청소기를 돌리고 저녁을 먹고 다같이 TV를 보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와 시간을 보낸다.
생각이 안난다면 거짓말이다. 조금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생각이 난다.
멍하니, 아무 생각 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평온하지 않다.
많은 생각이 머릿 속을 스친다.
아,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면 괜찮아지겠구나.
마음이 이렇게 편하지 않고 힘든데 굳이 이래야 하나.
그리고 작년 10월에 받았던 메일 같은 것들을 몇 개 들춰보면서 느끼는 씁쓸함.
나한테 매달리고, 강한 척하며 자신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설득하기 위해서 어떤 말이라도 했던 그 때.
사실은 그 때도, 나의 고통과 슬픔은 하나도 몰랐던 그였다. 단지 나를 잡기 위해서, 자신이 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뿐이었다. 나의 고통과 슬픔은 그 때나 지금이나 나의 몫이어왔다. 그는 알아줄 그릇이 되지 못했다.
주변의 말들을 믿지 말고 자기를 한 번만 믿어달라고, 결국 나의 감정을 알아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나라고. 진짜 죽을 힘을 다해 하고 있다고. 그걸 아냐고, 하며 간절하게 빌었다.
나는 믿고 싶었고, 기댈 곳이 필요했다. 외로웠고 고통스러웠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냥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 후에 더 큰 좌절감, 고통, 외로움을 느껴야 했다. 그는 나를 혼자 내버려두고 나와 싸우고 나서는 꼭 친구들을 집에 불러 밤새 술을 진탕먹고 놀았다.
유약하고 혼자를 못 견디는 그의 방법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나를 두 번 죽이는 배신이었다.
이제는 조금 더 차분하게,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를 무조건 비난하고,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일이 있었고, 그 때의 상황들이 그랬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는 그런 그릇을 가진 사람이었고,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는게 시급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 그를 이해하고, 함께하려고 줄곧 노력해왔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나에게 의지하고 그의 아픔을 내가 온전히 받아주길 바랬다.
그가 잘못해서 벌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트라우마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스스로를 불쌍해하고, 나한테도 자신을 불쌍하게 여겨달라고 호소하는 감정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나의 상처와 분노는 그 중간에 낄 틈이 없다.
그와 보낸 2년의 시간을 돌이켜본다.
일주일에 일주일을 싸우며 서로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너무 많이 싸우고, 상처줬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해하고 나면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함께 많은 추억을 쌓았다는 것.
내가 그에게 느낀 사랑, 내가 준 사랑이 모두 진심이었다는 것.
현실주의, 비관론자에 가까웠던 내가, 그와 함께 하면서 많은 생각과 사상을 바꿀 수 있었다는 것.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던 나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알려준 사람이었다는 것.
사람을 경계하며, 곁을 내어주는 법이 없던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 사람이었다는 것.
그와 미래를 함께할 생각을 진지하게 했었다는 것.
세상 다 살아본 어른인 척 해왔지만, 직설적이고 꾸밈없는 어린아이 같이 사랑을 표현하는 그에게 너무 쉽게 넘어갔던 것 같다. (어린아이 같은게 아니라 정말 어린아이에 멈춰있던 사람이었던 걸 몰랐다.)
나도 참 많이 좋아했었고, 많이 사랑했던 사람.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의 마음을 참 많이 보여준 사람.
인생에 가장 힘든 순간도 함께 해주고, 인생에 가장 큰 시련도 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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